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더 이상 들러리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인터넷의 경제민주화를 외치길 바란다. 일전에도 한 번 글을 썼지만 우리가 생산하는 작은 콘텐츠에 대한 현실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저 힘없는 댓글이나 달고 눈팅이나 하는 들러리로 전락할 뿐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른이의 이야기를 인정해주고 나의 작은 이야기 역시 인정받는 그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루카펫은 그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 본다. 나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는 날을 위한 가교역할을 말이다.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언론이 만든 사상누각

최근 뉴스에서 내 눈길을 끈 언론관련 보도는 JTBC 중계차 앞에서 반갑게 셀피를 찍던 시민들에 관한 이야기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비공개 서명식에서 언론사들의 집단 취재거부 관련 보도였다. 전자는 언론사에 대한 신뢰 제고라는 면에서 조명을 받았고 후자는 언론인들의 뜻있는 단체행동으로 읽혀져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언론사에 대한 불신이 다소 불식되었다고는 하지만 난 아직도 내 맘에 자리잡은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앙금을 지울수가 없다. 사람의 인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을진데 분노를 금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성과 행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 했고 이처럼 후안무치의 행태를 보이는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다. 눈발 날리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민주주의의 끝자락을 잡아보겠다고 200만 시민들이 눈물겹도록 고생하고 나머지 4천800만의 시민들은 안방에서 분노와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을 만든데에는 언론사들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없다고 본다. 진실을 보도하는 책무를 지키지 못하고 각종 접대와 로비에 녹아들며 박근혜가 원칙있고 바른 정치인이라는 사상누각을 만든것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언론이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앞으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자 한다. 오늘 이 시각에도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채 사상누각을 만들고 있는 제2, 제3의 박근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이 글을 남긴다.  
  

2016년 10월 9일 일요일

트위터의 역설

https://mkimweb.wordpress.com/2016/10/07/an-irony-of-twitter/

트위터가 매각에 들어갔지만 유력한 협상후보자들이 다들 철회를 했다. 내가 보기에는 트위터만큼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소셜네트워크는 없다. 거의 모든 미디어들이 지난 밤 유명인사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트윗했는지를 게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 대통령 후보라던가 거의 모든 사회분야의 주요 인사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트윗한 내용은 종종 사회의 핫 이슈가 되고는 했다. 하지만 트위터는 시장으로부터 여지없이 버림을 받았다. 이 역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이유는 바로 아무도 일반인들이 트윗한 내용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류언론과 우리 사회가 유명인사들의 트윗에 주목하면 할 수록 역설적이게도 일반대중들은 트위터로부터 멀어져 간 것이다. 사실상 소셜네트워크는 개개인이 자신의 메시지에 연속적인 반응을 목격할 때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트위터는 평범한 사람들이 '나는 힘없는 민초일 뿐이구나'라고 깨닫게 할 따름이었다고 본다. 즉, 한번도 개인 이용자들이 자아의 확장이라던가 자신에게도 영향력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도구가 되지 못했다.

다른 소셜네트워크 사업자들에게 좋은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백 투더 페이스

요즘 미국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다. 조금만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국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공개적인 후보지지와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지지자임을 대내외에 공개했다.

우리 사정에 익숙한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공개적인 선거운동을 해도 되나 하고 의문을 갖겠지만 여기서 나는 미국 사회의 민주성을 다시 한 번 읽는다. 상상해보자. 한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면 그 수하의 모든 공직자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아마도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복지부동과 '윗분'에게 잘보이기가 생활화된 사회에서 그 '윗분'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고 믿기 때문일게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후보를 열정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윗분 눈치보기에 전전하는 전체주의적인 정치와 행정을 하지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에 다름아니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투표 시스템하에서는 대통령도 누구나와 똑같이 1/N의 파워만을 발휘하기에 민주주의이라는 시스템이 잘 정착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현직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그 사회의 밝은 면을 보여준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신념의 문제이기도 하다. 권위에 눌려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말이다. 내가 제시한 글리넷의 비전인 휴머니스틱 네트워크를 한국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저 뚱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조금 다르다. 내 사업의 디테일과 수익의 전망도 물론 꼼꼼히 따지지만 난 만리타국 미국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인간중심 IT 비전을 내세운데 대해 칭찬과 공감을 전달 받았다. 신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몰인간적 로봇중심 사회가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 앞서 휴머니스틱 IT를 실현하려는 비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내 사업을 일구는데 있어서도 난 신념의 덕을 톡톡히 본다. 이곳 시애틀에 아는 이 한명 없는 나의 열악한 인맥도 신념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의 발명에 관한 특허 심사 제출을 담당한 유명변호사를 나는 우연히 만났다. 글리넷이 위치한 공용오피스에 그 로펌의 일부가 입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냅다 달려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번을 찾아가 보았지만 여전히 불꺼진 사무공간만 덩그라니 있을 뿐이었다. 해서 나는 포스트잇을 문앞에 남겼다. 특허 변호사를 찾고 있으니 연락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나의 연락처와 함께 남겼다.

그 며칠 뒤 나는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지금 너무나도 유익한 법률자문을 받고 있다. 인맥없이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과는 다른 상황인데 이 역시 신념을 논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된다. 그 변호사는 세계 최고 대학의 로스쿨을 나왔고 미국 전역에 엄청난 규모의 인력을 갖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다. 문앞에 남겨진 포스트잇에는 아마도 나의 절박함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대단한 인맥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마도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연락을 했겠지만 그렇지않은 내 사정을 뻔히 눈치채게 만드는 포스트잇을 버리지않고 직접 연락을 주는 태도에는 그의 신념이 확연히 묻어난다. 어느 클라이언트 한명도 소홀히 하지 않고 법의 정신을 투명하게 실천하려는 신념말이다.

난 소위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 중 신념이 돋보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신념이 올곧은 사람들은 항상 핍박받는 위치, 외면당하는 위치에 있는 것을 목격해 왔다. 조금 뛰어나다 싶은 사람은 반드시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교수사회는 물론이고 문과 출신이 무슨 특허냐며 조롱하는 변리사들, 남이 애써 만들어놓은 기획안 도용, 범법행위하는 유명 포탈기업 임원 출신 투자전문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의 잠재력을 애써 꺽으려하는 기간통신사, 무수한 시도에도 연구지원금은 커녕 아이디어 뺏어서 국정운영 기조에 반영하는 정부가 내가 경험한 한국 사회다.

새로 임명된 유엔의 수장이 평생을 난민운동에 헌신한 사람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보면 국제사회도 신념이 가진 파워와 미덕을 무시하지는 않는 것이 분명하다. Back to the faith.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되돌아 보길 바란다.